아이들에게 흙을 밟게 해주겠다는 생각으로 남편과 함께 시작한 주말농장에 배추가 수백포기 자랐다. 벌써 서리를 맞아 지금이라도 뽑지 않으면 안될 정도가 되었다. 어느덧 겨울이 오려나 보다.
이 맘 때쯤 이던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 앞 마당에 배추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지금 기억으로는 한 200 포기쯤은 족히 되었을 성 싶다. 엄마는 동네 아줌마들과 품앗이로 김장을 하셨고 나는 여린 배추 잎사귀에 양념 속을 넣어 먹는 재미에 옆에서 파를 다듬고 소금 봉지를 벌리고 이리저리 들뜬 마음으로 엄마를 도왔던 기억이 난다. 김장이 끝나고 나면 집 한 구석에는 까만 연탄을 수북하게 쌓아 놓았었다. 그리고 집에서 운영하던 구멍가게 한 구석에는 연탄난로가 놓이게 되고 그 위에 얹힌 호빵통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나곤 했었다. 음.. 그렇게 하면 우리 집의 월동 준비는 끝이었다. 아 참 아마도 엄마는 다섯 남매를 따뜻하게 해줄 겨울 내복과 갖가지 겨울 옷 준비를 위해 또 한번 시름을 하셨으리라.
주말농장에서 거둔 배추는 한 300포기는 족히 되는 것 같다. 친정에 시댁에 그리고 가까운 친지들에게 나눠드리니 모두 무농약 무공해 배추인지라 맛있다고들 하신다. 이번 김장은 내 덕에 맛나게 준비하신다고…
우리에게 밭을 분양 해 주신 주인 아저씨는 ‘배나무’도 분양을 한다. 우리도 지난 봄 아이들 이름으로 두 그루의 배나무를 분양 받아 10월에는 몇 상자의 배를 수확해서 이도 역시 친지들과 나눠먹게 되었었다. 한 그루에 4만5천원씩 해서 9만원을 주고 배나무 두 그루를 분양 받았는데 배나무 꽃이 필 때, 열매가 열렸을 때 그리고 간간이 아이들에게 흙을 밟게 해주고 싶을 때 우린 배나무 밭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자연을 즐겼었다. 배 몇 상자에 그런 기쁨까지 누렸으니 나로선 전혀 손해가 없다. 주인 아저씨 역시 배나무를 그냥 키워서 하나하나 배를 따서 시장에 내다 팔려면 그 인건비와 재고물량 등을 고려하건대 이보다 낫다는 보장이 없다. 어찌 보면 안전한 판매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여름 끝 무렵부터 아저씨는 김장 배추와 무를 예약 판매한다고 길가에 커다랗게 플래카드를 붙이셨었다. 그리고 며칠 전 아저씨의 무밭에 가보니 이미 예약된 무가 모두 팔리고 없었고 배추 역시 그랬다. 우리도 미리 주말농장을 분양 받아 그 동안 그 밭에서 난 아욱이며, 토마토며, 옥수수, 상추, 파, 감자, 고추, 그리고 배추까지 수확한 것을 보면 게다가 무공해 무농약 농산물이라 나로서는 참 흡족한 거래였다. 주인 아저씨도 그렇고 주말농장이나 배나무를 분양 받은 사람들, 그리고 배추나 무를 예약 구입한 사람들 모두 이익이 되는 거래인 것 같다.
요즘 농촌에서는 열심히 수확한 농산물이 팔리지 않아 애를 먹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다.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인터넷을 통해 농산물을 직접 유통하기도 하지만 아직도 많은 농민들이 유통에 어려움을 겪고 있음에 틀림 없다. 한편 도시에서는 대형 유통점을 통해 구입하는 농산물에 대한 신뢰가 깨져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소비를 하게 된다. 이런 서로의 욕구가 맞물려 상부 상조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면 얼마나 좋을까?
농촌의 주부들은 미리 예약 판매 등을 통해 매출에 대한 안정성을 보장 받고, 도시의 주부들은 농촌에서 직접 보내오는 품질 좋은 농산물을 공급 받을 수 있다면 이것이 바로 상부상조가 아닐까 싶다.
그것이 비단 도시와 농촌 간 뿐이겠는가? 어릴 때 동네 아줌마들이 하던 김장 품앗이처럼 우리네 삶 속에서도 도·농 간의, 그리고 바깥일을 하는 엄마와 가사육아를 전담하는 엄마들 사이에 품앗이가 활성화 될 수 있다면 우리네 살림은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아줌마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서로 돕는 따뜻한 살림을 한다면 대한민국 가계경제의 미래는 더 밝지 않겠는가? 대한민국 힘있고 아름다운 아줌마 모두 파이팅!
(이 글은 현대상선 사보 '바다소리'에 연재하던 '알뜰살뜰 생활경제 칼럼'의 맨 마지막 편인 12월호 글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