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딸이 나처럼 살지 않으려면 아들을 잘 키워야 해"
정신 없는 하루 일과가 끝나면 나의 발걸음은 바빠진다. 회사가 있는 종로에서 경기도 덕소의 집까지는 1시간 남짓 소요되는 거리다. 운전대를 잡은 내 마음은 항상 사랑스러운 내 아이들이 있는 덕소의 이웃 아줌마네 집으로 한 걸음 달려가 있다. 그 집의 아파트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일곱 살 난 딸아이와 이제 막 걷기 시작한 아들 아이가 달려든다. 먼저 달려든 큰 딸 아이를 부둥켜 안은 나의 눈은 이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어설프게 걸음을 띠는 아들 아이에게 가 있다. 아이는 활짝 웃으며 내게 안기자마자 나의 젖가슴 쪽으로 얼굴을 내리고 마구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려고 한다.
아들 아이의 입 속에 젖을 물리고는 정신없이 젖을 빨아대는 아기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그 사이 딸 아이의 입은 앞으로 주욱 나와버렸다. ‘엄마는 매일 재용이만 좋아해!’ 라고 또 울먹이는 딸을 보며 난 또 생각에 잠긴다. ‘이 젖을 물고 있는 아이가 딸이었다면…? 이 아이가 아들이라서 딸 아이에게 소홀해지는 건 아니겠지?’ 딸과 아들, 성이 다른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인 나는 종종 이런 난처한 상황에 부딪치게 된다.
아줌마들과 만나다 보면 늘 하는 이야기가 있다. ‘남편이 집안 일을 하나도 도와주지 않는다. 남편과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 남편과의 잠자리에서 남편은 자기 중심적이다. 도대체 이런 남편을 바꿀 도리가 없는가? ‘ 우리 나라의 가부장적 가정 환경 내에서 자라 온 대한민국 남성들의 일반적인 특징에서 비롯된 것일게다. 이런 남편을 바꾸기에 지친 아줌마들은 남편의 어머니인 시어머니를 원망하게 된다. ‘우리 시어머님은 당신 아들을 자기 손으로 라면 하나도 못 끓여 먹는 바보로 키우셨어.’ 박사 남편을 둔 어느 아줌마의 말이다.
내 또래의 아줌마들은 불평 끝에 이런 결론을 내리곤 한다. ‘내 아들을 잘 키워야지, 남편을 바꾸기는 너무 어려워. 우리 아들이 커서 누군가의 남편이 되었을 때 또 아빠가 되었을 때 지금 내가 바라는 남편의 모습, 아빠의 모습을 가질 수 있도록 하려면 내가 내 아들을 잘 키워야 해’ 라고. ‘내 딸이 이 담에 나처럼 살지 않게 하려면 아들을 잘 키워야 한다’ 고 고개를 끄덕여가면 맞장구를 친다.
그렇다. 우리 세대의 남자들, 남편을 바꾸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세대의 여성, 엄마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아들을 ‘잘’ 키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내 젖을 입 안 가득 물고는 땀이 나도록 빨아대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이 책에 나오는 ‘마초나 파샤’, ‘폭력적인 훌리건’, ‘마마보이’ 가 되는 것을 상상하고 싶지 않다. 이 책의 원고를 훑어보며 난 남편에게 ‘모범적인 남성상’에 대해 그리고 우리 아들 아이가 보여주는 ‘바람직한 징후’ 들에 대해 침이 마르게 설명을 한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아이는 천재로 태어나지만 부모가 아이를 바보로 만든다’ 라고. 이 책은 나처럼 딸을 키우고 아들을 키우는 이 땅의 어머니들에게 또 ‘마초 근성’에 길들여진 아빠들에게 자기 반성의 기회를 주고 올바른 자녀 교육을 하고자 하는 부모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소중한 지침이 될 것이다. 부모도 끝없이 공부하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두 아이의 엄마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이 글은 2003년 봄, '내 아이 마초로 키울 수 없다'라는 책의 추천글로 제가 쓴 글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