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박2일 야생이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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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1박2일 야생이야."
"네? 어딘데요?"
"그야 시골이지."
"헤헤헤. 겨우 할머니 댁 이구만,"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일단 맑은 공기, 텃밭냄새, 풀냄새, 흙냄새가 좋았다.
그리고 훤히 트인 시야에 높은 산과 그 위를
지나는 구름과 강렬한 햇빛이
내 온 몸을 반겨주어 긴장이 풀려 왔다.
내 집 아닌 곳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모든 속박을 벗어나 자연인으로 돌아간 느낌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먼저 딸에게 자랑삼아 나도 1박2일 야생한다고
전화했더니 마치 어린애 물가에 보낸 양,
주의를 주며 잘 놀다 오라 한다.
어머님 모시고 남편과 셋이서
보림사 부처님 마중하러 가서 병풍처럼 둘러싸인 산과 숲의
정기까지 마음껏 들이키고 나왔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 근처 계곡 옆의 시원한 정자에서
준비해 가지고 간 도시락을 먹었다.
어머님이 좋아 하시는 꽂게장에
당근 주스까지 만들어간 나의 센스,
거기에 어머니가 좋아하신다고 바쁜 틈에 만들더라고
슬며시 내 수고를 귀띔 해주는 남편과
어머님의 칭찬으로 기분이 아주 좋았다.
아버님 살아계실 때 한 번 와서 놀았던 추억을 얘기하며
그 새 얘들이 다 커 버려 이젠 우리 셋이서만 덩그러니 와 있는
그림이 잠시 쓸쓸해 보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일어서 유치 자연 휴양림을 찾아 갔다.
보이는 산이며 울창한 나무숲은 자연이 가꾸어 놓은
훌륭한 봄의 주인들이었다.
짙푸른 숲속의 숨 쉬는 경치에 어느 듯 내 마음은
푸르게 푸르게 날아들고 있었다.
쉰 넘어 꽃과 나무 가꾸기에 재미를 쏘옥 바치는
내 눈에는 세상 어느 꽃과 나무, 또 이름 모르는
풀 한 포기 까지도 아름답기만 하니 이를 누가 말리겠는가.
시골에서 1박 할 예정으로 왔으니 남는 게 시간이었다.
탐진강 댐을 구경하고
고인돌 유적지를 둘러보는데 어머님은 생전 에 처음 보신다며
신기하다 하셨다.
천관산을 찾아 굽이굽이 산길을 가는데
약 10km 정도 갔을까?
남편이 꼭 가 보아야 할 이유 있느냐고 물었다.
산이 좋아 나무가 좋아 꽃이 좋아 가보고 싶다고 하려다
운전 힘들면 그냥 돌아가자고 하였다.
요즘 업무로 인한 피로가 누적된 듯
피곤해 하여서 천관산 입구도 못가 보아 서운했지만,
차를 돌려 시골집으로 가자하였다.
저녁을 먹고 운동 삼아
남편과 어두운 동네 앞 둑길을 빙 돌아 걸었다.
까만 밤인데 논에서 개구리들은
뭐가 신이 나는지
개굴개굴 깨골깨골 개리리 고르룩 서로 잘났다고 난리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합창이었다.
아주 옛날 내 고향에 살던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개구리 소리는 언제 들어도 동요처럼 따라 불러진다.
개구리의 수명이 2년 정도라니
그 때의 개구리들 대대 후손이 있다면 아마 20대손이 되겠지.
세월 참, 모내기 철 수로에 물 흐르듯 빨리도 지나간다.
셋이서 누워 이 얘기 저 얘기 하다가 내가 먼저 잠들었던 것 같다.
지지배배 짹짹 지지배 짹 찌지 지찌 짹짹 하는 요란하고도
맑고 고운 소리들에 잠이 깨었다.
아직 채 아침 여섯시도 안 된 시간이었다.
눈 비비며 소리 나는 곳을 찾아 나가 보았다.
마루 위 처마 안에 제비가 집을 지어 새끼들을 낳아 기르고 있었다.
아버님 살아계실 때는 제비집도 서너 채는 되더니만,
딱 한 채 지어 놓고 어미 제비는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다
아기 제비들 입에 골고루 넣어 주었다.
서로 받아먹겠다고 입을 쩍쩍 벌리는
아기 제비들이 제법 고개를 디밀어 낼 정도로 많이 자라있었다.
마당에서는 참새들이 날며 짹짹거리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보다가 며칠 전부터 몸이 안 좋다던
기숙사에 있는 아들 생각이 났다.
뭐에 바빴는고 약 먹으라고만 문자 보내고 깜빡 잊어버렸었다.
연휴를 아파서 어찌 보내는지 안타까워졌다.
제비도 자식의 입에 먹이를 넣어주고 먹는 걸 지켜보는데
떨어져 있어 안 보인다는 핑계로 어미가 되어 가지고 애처럼 들떠서
산천 구경 다녔다니 아들에게 진짜 미안했다.
결국 1박 2일 마무리는 자식걱정을 시작으로
내 자리 찾아 돌아오며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우리 집에 돌아와 피곤해하다가 지진으로 수 만 명이 죽고
행방불명에 도시가 폐허가 되고
구사일생 살아 나오는 사람들의 뉴스를 보며 깜짝 놀랐다.
안타깝고 불쌍해서 그 사람들을 위해 마음으로 기도를 하였다.
더 이상의 천재지변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우리는 바로 앞의 운명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걸
또 한 번 깨닫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서 나는
현재의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아들에게도 그깟 열나고 배 아픈 것에 눕지 말고
일어나 의지로 이겨내라고 문자 보냈다.
강해야 한다고, 세상을 찾지 말고 네가 세상을 만들어 보라고.
너의 마음 안에 항상 야생의 기질을 기르라고. 2008.5.1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