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까지도 이렇게 더위를 느껴보지 못 했는데,
요즘 해가 뜨면서부터 밤까지 너무 더워
때맞추어 밥 먹기도 귀찮다.
집이 아파트 9층이라 왠만한 한 낮의 더위는 선풍기 두 대면
참아 낼 수 있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인지 올 여름 장마 끝에 시작 된
섭씨 32도의 무더위는
다리 힘까지 풀려 절로 휘청거리게 한다.
그저 거실 바닥의 대자리에 뒹굴다가 배가 고파서 일어나
냉장고를 열지만 먹고 싶은 게 없다.
허기를 채우려고 생수에 밥을 말고 쌈장과 매운 고추를 꺼내어
겨우 몇 수저 먹는데,
퍼뜩 고향의 펌프 샘에서 퍼 올린 시원한 지하수에
밥을 말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키가 작어 홀짝홀짝 뛰면서 펌프질을 하여 겉물을 버리고
차가운 속물에 보리밥을 말아
누런 된장에 풋고추를 찍어 먹으면, 한 그릇의 물과 밥은 금세
후루룩 들어가 배를 채우며 속까지 시원하게 해주었었다.
고향을 떠나 머리가 허여지신 친정아버지께서 해마다 여름이면
하루 두어 번은 꼭 생수에
밥을 말아 매운 고추를 된장에 찍어 드시는 걸 보았다.
그럴 때면 진수성찬을 마다하시는 아버지를 이해 못했는데,
이제야 내가 그 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버지께서도 고향의 펌프 샘 물맛이 그리워서
잊지 못하셨다는 것을 ...
결혼하여 시댁의 펌프 샘 물맛에 젖어 들었지만,
내 고향 금천의 물맛은 어디서도 찾을 수가 없다.
언제부턴가 우리 아이들은 시골에 가려면 생수를 챙겨간다.
달작 지근하고 차가운 물을 뿜어내던 펌프 샘이 사라지고
지하수를 믿지 못하게 되어 필수품이 된 생수를,
나는 자연산 잎을 넣어 끓여 마시고 있다.
다만 목마름을 적시기 위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