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父子無親의 원인은 치마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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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까?" "10분 후에요." "넌 무슨 시간을 철저하게 정하고 행동하드라." "헤헤헤." 부자지간이 다정하게 대화를 나누더니 세면도구를 챙겨서 나란히 집을 나서는 것이었다. 벌써 두번째 둘이서 목욕탕을 가는 신기한 볼거리였다.
요즘 들어 코를 실룩 거리며 기분이 좋아 들떠 있는 아빠의 웃는 얼굴을 보면서 내 잘못을 실감하고 있다.
아마 약 8년만에 부자지간이 즐거운 기분으로 목욕탕에 가는 걸 구경해 보는 것 같다.
둘이의 사이에 벽을 쌓게 만든 원인이 내 탓인 것도 모르고 아빠한테만 아들과 왜? 친하지 못하느냐며 아빠 성격 탓으로만 돌리고 개선 할 생각을 못했었다.
역시 남자들의 세계는 뭔가 상통하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았다. 더구나 부자지간에는 엄마가 할 수 있는 그 이상의 다른 차원의 힘이 있음을 난 미처 깨닫지 못했다고 해야겠지.
호야가 명절 이틀 전부터 2주간의 방학을 맞이 하여 집에서 쉬게 되면서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다.
하루는 학원 일을 마치고 어두워서 집에를 들어 왔는데, 당연히 있어야 할 자리에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아빠는 컴퓨터를 하고 있을 것이고 호야는 자기 방에서 수학 문제나 풀고 있겠지 했는데, 거실부터 방마다 어둡고 아무도 없이 썰렁하여 순간 내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하였었다.
아빠가 호야를 주눅들게 하여 산으로 운동 가자며 데리고 나갔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나 없을 때 권한을 행사 한 아빠가 미워서 화가 치밀었었다. 마음에 없이 따라 갔을 호야가 가엾어서 들어 오면 따지려고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늦지 않고 들어 오길래 추운데 아이를 뭐하러 산에 데리고 갔다 오느냐고 먼저 큰소리로 물었다.
그런데 반응이 둘이서 웃으며, 아빠가 하는 말이 "우리 목욕탕에 갔다 왔어." 하여 깜짝 놀래서 다시 한 번 묻고 보니까 향기가 풀풀 나는데 참 깔끔해서 보기 좋고 냄새 좋고 그 순간이 엄청 기뻤다. 세상에 이게 몇년만인가. 호야가 초등학교 때 아빠가 목욕탕에서 싫은데 찬 물에 들어 가라고 한다며 같이 가기 싫어해서 호야편에서 아빠께 데려가지 말라고 했었다. 한 번 두 번 같이 안 가더니 자라면서 습관이 되어 버렸고 고집이 생기더니 중고등학교 가면서는 오히려 내가 아빠랑 같이 목욕탕에 다녀 오는 걸 보는것이 소원이라고 해도 들으려 하지를 않던 아이였다.
그런데 둘이 어떻게 민주적으로 마음이 통했는지 엊그제 또 두번째로 같이 목욕탕을 다녀 오는 것이었다.
그 뿐인가. 아침 여섯시에 호야는 안 떠지는 눈을 뜨고 아빠를 따라서 산에 가는데 억지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난 걸음으로 다녀 오는 것이었다. 호야 어렸을 때 산에도 내가 춥다던가 힘들다던가 공부해야 한다던가등으로 핑계를 대어 못 데려가게 했었다. 그 후 자라면서 아빠가 사정 하면 싫다 하고 화를 내면 겨우 무거운 발 걸음으로 따라 나서곤했는데, 이번 2주 동안에 부자 지간이 벽을 허물어 참 보기 좋았다.
이 모두가 치마폭에 싸서 기르려 했던 내 잘 못 생각이었음을 긴 세월이 지난 후에야 느끼고 뉘우치게 되었으니 나도 참 헛 살았음에 부끄러워 하고 있다.
시아를 기르던 방식으로 호야를 조심스럽게만 길러 냈으니 이제와서 박력있는 남자로 변해 달라는 내 주문은 얌전한 호야에게 큰 부담이겠지. 다행히 아빠가 내 치마폭에서 호야를 꺼내 주었으니 앞으로는 호야가 남자 다워 지는 노력만 하면 몇년 후 군대에 가도 잘 이겨 낼 거라는 생각이 든다.
부자무친의 원인은 치마폭 이었음을 솔직하게 시인하면서 남편에게 그동안 미안했음을 사과 하는 마음이다.
2006.2.14.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