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혼자서 산에 가려다 말고 갑자기 신경질을 부리며 호야에게 큰 소리로 화살처럼 쏘아 대기 시작하여, 듣고 있던 내가 호야 편을 들어 아빠에게 한마디 말대꾸를 했더니, 완전히 열을 받아 목소리가 갈라지며 집안 분위기를 삽시간에 암흑으로 덮어 버려, 아빠의 갑작스런 꾸중에 겁이 나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아들을 보다 속이 상해 버린 나도 같이 소리를 질러 버렸다.
31일, 일 년의 마지막 하루를 우리 가족은 각자의 방에서 문 닫고 마음 닫고 웃음 없는 썰렁한 분위기로 지내며 식사도 수저 젓갈 움직이는 소리 외에는 침묵으로 지내고 밤이 왔다.
이제 하루 밤 지내고 나면 다시 기숙사로 가야 할 호야의 기분을 풀어 주려고 간식을 챙겨 먹이며 방에서 나오게 하려고 애쓰다 겨우 밤이 되어 얼굴들이 조금 펴지기 시작 했는데, 아빠가 혼자 운동 다녀와서 하는 말이 모두 연말이니 노래방 가자는 것이었다.
왼 종일 어정쩡한 분위기에서 겨우 벗어나려 하는데 무슨 노래방? 그것도 몇 년을 안 가봐서 낯 설은 판에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얘들이 지금 노래가 어디서 나오겠느냐며, 나 역시 노래방 갈 마음이 없으니 가지 말자고 한마디 했더니, 바로 터지는 또 갈라지는 목소리가 집안을 다시 암흑으로 덮어 모두 말없이 각자의 방으로 들어가 한 해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새해의 아침을 그저 창문에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는 것으로 무의미하게 맞이했다.
그리고 새해 첫 날 하루를 서로 피하느라 대화 없이 남의 가족처럼 소 닭 보듯이 보냈다.
호야를 터미널까지 택시 태워서 보내고 저녁 설거지를 하며 참자 내가 참자 내 탓이다 내 탓이야 하며 마음에서 분을 삭이는데 무척 힘들었다.
시아가 없다면 아들에게 왜? 그렇게 정 없이 대하느냐고 따지며 잘 잘못을 가려보고 싶었는데, 시아에게 아빠의 화살이 돌려 질까봐 꾹 꾹 참았다.
시아 역시 교사가 되려면 겨울 방학동안 지도 경험을 쌓아야 한다며 아빠가 학원에서 알바를 하라고 했는데, 아직 알바 자리를 구하지 못해 매일 바늘방석에 앉아 있는듯하다 하여, 시아가 한편 안쓰럽기까지 하던 참이라 집안 분위기를 더 이상 무겁게 하고 싶지 않아 참아 버렸다.
우리 아들 호야가 자애롭지 않은 아빠의 성격으로 커 갈수록 주눅이 들어 할 말을 제대로 못 하는 게 정말 참을 수 없이 화가 난다.
사내답게 강하게 기르겠다는 생각은 이해가 가는데, 아들의 의사를 존중해주지 않고 무조건 아빠가 하라는 대로 따르라는 식의 방법이 마음에 들지 않아 우린 늘 그 견해 차이로 화를 내고 살다 보니 이젠 골이 깊어졌나 보다.
갈수록 아빠의 성격이 싫어진다.
아직까지 부모 말을 거슬려 보려 하지 않을 정도로 착한 아이인데, 대화 없이 막무가내로 화부터 내는 아빠에게 적응이 되지 않아 모든 재능이 다 사라지고 있다.
이번에도 컴퓨터를 왜? 해야 하는지 아빠께 설명도 못하고 아빠가 잠을 잘 때 운동을 나갔을 때 잠깐씩 하면서, 내게만 홈페이지를 만들어 어디에 출품하여 상금을 타려는 생각이라고 해서 잘 만들어 보라고 격려를 해주었는데, 아빠는 그저 헛짓거리 하는 걸로 보였는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것도 못 마땅해 했고, 아빠가 컴퓨터를 차지하고 있는 동안 호야는 텔레비젼을 요리 조리 돌리며 황금 같은 연휴를 쉬고 있는데, 그것도 아빠는 보기 싫었던지 드디어 31일 아침에 폭발을 해 버려 집안 분위기를 망쳐 놓은 것이다.
아빠의 꾸중 내용은 3일 동안 두고 보았더니 공부는 안하고 틈만 나면 컴퓨터와 텔레비젼만 보고 소설책이나 읽고 한다며 수학 문제나 다른 문제집 한 장 가져와서 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공부는 학교에서 하고 집에서는 몸과 마음을 쉬어야 다시 충전해서 학교에 가 공부를 열심히 할 것 아니냐는 대변이었었다.
아빠는 내게 그런 식으로 고등학교 일학년을 다 보내게 하고 언제 공부해서 목적했던 대학을 가겠느냐는 뜻이었다.
그래서 공부는 절대로 억지로 해서 머릿속에 들어가는 게 아니니까 강요 하지 말고 스스로 미치게 공부할 때까지 지켜보자고 했던 것이다.
누구의 생각이 옳은지 아직도 모르겠다.
내 생각은 호야는 원래 마음먹으면 해내는 성격이니 믿고 지켜보았으면 좋겠는데, 아빠는 자꾸 자극을 주어야 한다고 한다.
이렇게 아빠랑 대화 없는 호야는 날로 말 수가 적어지고 이젠 뭔가를 설명해 달라고 하면 내 눈도 똑 바로 보면서 자신 있게 자기 의견을 말 하지 않는다.
아이큐 157에 우수한 성적을 유지 하고 있고, 성격도 명랑했고 초 중학교 때 축구도 달리기도 대표는 맡아 놓고 하고, 글짓기며 노래 춤 대회까지 거기에 학교 방송 아나운서 까지 자신 있게 뭐든 잘하던 아이였는데, 요즘은 그 반짝이던 눈빛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정말 속이 상해 내가 죽을 지경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유난스런 아빠의 옹고집 때문이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절대 아이들은 업어서 기르면 안 된다며, 안아서 재우거나 어르기도 안했고 밥 좀 먹이려 따라다니는 짓도 하지 않았으며, 같이 뒹굴며 장난치고 놀아준 적도 없다.
그러니 어리광이나 떼 쓰기는 커녕 아빠 눈치 보며 사고 싶은 것. 갖고 싶은 것도 참아 버리며 자랐고, 공부도 혼자서 해결하며 했고, 아빠랑 베드민트 몇 번 억지로 따라가 하다가 비실거린다고 꾸중만 듣고, 목욕탕은 어렸을 때 찬물에 억지로 들어가라고 하여 무서웠던지 목욕만큼은 고집을 부리며 같이 가기를 꺼려하여 아빠가 포기한지 오래 되었다.
대충 생각해 내어도 이렇게 아빠하고 친함이 없었으니 지금 얼마나 얘기 거리가 있어서 가까워지겠는가 아들 입장이 이해가 된다.
갈수록 아들은 자라고 아빠는 늙고 세대 차이는 벌어지고 이러니 점점 호야가 말이 없어져 사회성이 결여 될 것 같고, 아빠한테 받는 주눅으로 어떻게 학교에서나 밖에서 자연스런 대화를 끌어내는 기질이 생겨나겠는가.
더구나 앞으로 대 입시 때 논술이며 구술을 어떤 자신감으로 치르어 낼지 걱정이 태산 같은데, 지금부터 입을 열게 하고 자기 의사를 분명하게 말 하도록 하는 훈련을 시켜도 시간이 없을 판에, 휴일이면 그리운 집에 다니러 오는 아이에게 벌써 몇 번째 마음을 상하게 하여 보내고 있어서 기운 없이 차를 타고 가는 아들을 배웅하고 아빠를 보면 내 가슴이 답답해져서 숨을 쉴 수가 없다.
제발 다음부터는 행복하고 즐거운 분위기 속에서 아들이 마음 편히 쉬었다가 가서 공부 열심히 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러면 아빠가 성격을 바꾸어야 하는데, 타고 난 고집이라 어쩔 수 없으니 그냥 아들을 믿고 지켜 보아 주기만 하였으면 올 해의 다른 소망이 없겠다.
부모는 그저 자식의 능력을 믿어 주기만 해도 용기를 주는 것 일 텐데, 아빠는 왜? 앞서서 걱정하고 안달을 해야 스스로 위안이 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글을 쓰다 보니 이제 마음이 후련해짐을 느낀다.
있는 그대로의 심정이었지만 다시 읽어 보니 부끄러워지기도 한다.
아무튼 새해 첫 날의 어두웠던 마음을 털어 내어 버리고 둘쨋날인 오늘부터서는 새로운 각오로 힘 있게 나의 개띠 해를 시작하려 한다.
영리하고 날쌘 개로써 우리 가정을 지키고 시아와 호야를 보호 해 주어야지.
2006.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