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이 다가 오니까
부쩍 남편의 신경질이 늘고
웃음기 없는 얼굴로
컴퓨터를 산만하게 여기 저기
검색하고
재미 없는 마음으로 눈에는
슬픔과 원망과 자책감으로
생기가 없어져 가고 있었다.
시골에 어머님께
조심스럽게
이번 명절도 제사 때문에
큰댁에 못가시게 되겠어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는데,
이번 명절안에
제사를 못모셔가면
앞으로 3년을 더 어머님이 모셔야된다고
하시면서
내게는 걱정말고
아범 건강에나 신경쓰라고 하시기에
전화를 끊고
이틀을 생각해 보았다.
남편이 태어나기 전에
결혼 일년만엔가 돌아 가셨다던
남편의 큰 아버님의 제사다.
그러니까
남편의 백부님이
자손이 없으셔서
둘째인 남편이 그분의 양자로써
제사를 받들게 되어 있었던 것인데
작년까지는 시아버님께서
제사를 모셨는데
작년에 시아버님께서 돌아가셔서
이제 우리가 모셔야 될 형편인데
남편이 암 투병중이라
몇년 더 있다 제사를 모셔 오려 했었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번에 모셔와야 될것 같다는
생각이 굳혀져서
남편과 상의하여
내가 가서 모셔 오겠다고 나섰는데,
남편이 운전을 조심스럽게 하면서
같이 다녀 오자고 하여
몸이 아프니 고향 사람들 만나기 싫다고
그동안 고향에 가지 않았는데
큰 맘 먹고 다녀왔다.
그날부터
남편은 뭔가 더 의무랄까
살아야만 될 이유를 찾은듯
얼굴빛이 밝아졌고
짜증도 없어졌다.
손수 자기의 손으로
제사 상에
술을 따라 올리고
절을 하는데
가장으로써
후손으로서써
본분을 다하는 뭔가 무게가 보이는 모습이었다.
아픈 사람으로 보이지 않고
건강하게 오래 살수 있는
모습으로까지 보였다.
이제야 뭔가 해야 할 일을
다 한듯
나 또한 마음이 편해졌다.
큰 잘못에서 벗어난 느낌처럼.....
그리고 어딘가에서
우리 가족의 뿌리를 찾은듯
마음이 든든해짐을 느꼈다.
지금까지 명절이면
시댁으로 가서 자식인듯 손님인듯 보낸것 같은데
직접 내 손으로 우리집에서 명절상까지
차리고 나니
얘들도 이제야 명절 기분이 난다고
좋아하여
새삼 명절의 의의를 다시 생각하게 했다.
조상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잘 살아가고 있음을....
그리고 제사를 모셔온 더 큰 이유도 있다.
우리가 결혼 하기전에
연애하다가
헤어지고 싶은 이유가 있어서
이별의 편지를 써놓고
다음날 만나서 손에 쥐어주고
바로 돌아서 오겠다고 결심하고 잠에 들었는데,
그날밤 꿈에
처음 보는 약 오십대의 아주머니 같은 분이
우리집 근처까지 오셔서
내게
"처녀가 우리 ㅇㅇ와 사귀는 처녀인가?"
하여
"네 그런데요"
했더니
"나는 ㅇㅇ큰어머니인데 ㅇㅇ심부름으로 이걸
전해 주러 왔다"
하시며 긴 두루마리를 주시기에
펼쳐서 읽어 보았더니
나를 무척 사랑 한다는 내용의 사연이 구구절절
쓰여져 있어서
그 분에게 우리집에 가시자고 하며 모시고 들어간
꿈을 꾸고는
다음날 만나서
꿈 얘기를 들려주며
그 큰어머니란 분이 어디에 사시냐고
물었더니
깜짝 놀라며 자기는 큰어머니 얼굴도 모르고
큰아버지께서 결혼 일년만에 갑자기
돌아가셔서
가족들이 자손이 없는 큰어머니를
다른곳에 개가 하시도록
친정으로 보냈다는 얘기만 들었다고 하여
별 희한한 꿈이라고 생각했는데
꿈 이야기를 시아버님께 남편이 얘기하여
시아버님께서 조상이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신거라고
서둘러서 우리를 결혼하게 해주셨던 사연이 있었다.
그러니 큰아버님 제사를 우리가 빨리 모셨어야 했는데
결혼후 이십이년만에 제사를 모시게 되었으니
양자로써 잘못을 하고 있었던게 아닌가 생각되었다.
그래서 이제야 속이 후련하도록
편안함을 느낄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사실 천주교 신앙을 갖고 있어서만은 아니지만
평상시 제사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렇다고 마음에서 싫다고 거부하지도 않았었다.
천주교식으로 제사를 모시면 되니까
부담도 없었다.
그냥 서둘러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의무라는 걸
인정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에
마음을 바꾸어
정성을 들였더니
남편의 마음에 어떤 희망을 준것 같고
어머님께 자유를 드린것 같고
얘들에게 가족의 뿌리를 느끼게 해주었던것 같아
결혼후 내 자신에게 처음으로 칭찬을 해본다.
2005.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