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처럼 햇빛이 따스하게 내려앉은 과수원에 주렁주렁 열린 배나무밭을 지나 가지가 휘어지도록 예쁘게도 매어달린 단감 나무들아래, 허리도 반듯하신 할머님의 목소리엔 기쁨으로 들뜨신듯 매우 신명나셨고, 15년만의 반가움과 그리움의 정을 한꺼번에 다 못주심을 안타까우신듯 그저 많이 더 많이 만을 고집하시며 마음껏 단감을 따가라 하셨지요.
하찮은 오해로 너무도 오랜만에 마음을 열고 찾아뵈었던 3년전의 가을이 또 이렇게 다가왔는데, 할머님의 핸드폰 번호 알려주시며 자주 전화해달라고 하시면서 더있다가라고 아쉬워하시는 할머님의 따뜻한 손을 겨우 놓으시게 하고 온 후로 아직도 전화 한번 못해 드리고, 할머님께서 서울로 올라가셔서 큰 아파트에서 혼자 기거 하신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면서도 선뜻 안부 전화를 못하였던 저를 용서하여 주십시요.
집안일 해주시는 분 다녀가시면 심심하셔서 여기저기 전화 하시고 가족들을 불러 소일 하시는 할머님, 눈이 침침하시다며 라식 수술을 하셔서 이제 더 잘 보이시니 글도 많이 읽으시고 안가보신데 없이 우리나라 전국 방방곡곡 다 가보셔서 모르는곳 없으시고 아직도 어느산 어느바위까지 기억하셔서 들려주신다는 총명하신 할머님, 저도 이다음에 나이들어 손자 손녀 앞에서 할머님처럼 대단하시다는 말을 들을수 있을지 장담을 할수 없는것이 안타깝습니다.
우린 아직도 여유롭지 않은 생활 때문에 할머님 처럼 만사가 그저 다가오고 순순히 물러가주지 않기때문에 세상이 어렵기만 하니까요.
할머님 그래도 전 희망을 가지고 하나 하나 해결하며 세상을 내것으로 만드려 노력하고 살기 때문에 할머님을 자꾸만 떠올리며 그리워 한답니다.
이번 생신에도 저는 갈수없어 못 찾아뵙니다만 기다려 주십시요.
내년 아니면 다음해에는 정말 기쁘시도록 해드릴께요
꼭 건강하셔야 돼요 지금처럼요. 제이름 아직도 잊지않고 계시다니 고맙습니다.저도 할머님처럼 멋쟁이로 인생을 마무리하며 살거예요.
할머니의 모습을 제일 많이 닮은 손녀가 드림니다.
2004년 10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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