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야래향(夜來香)... 밤에 향기로 오는 화초...
이 놈도 향기가 무척이나 좋다. 이놈의 향기는 정말 밤이면 진하게 온 집안을 감싸안고 도는데...너무 강하지도 너무 진하지도 너무 화려하지도 않은 것이 가을 하늘을 닮았다.
은은하면서도 기분 좋게하는 놈이다.
3년전부터 키우기 시작했는데, 내가 아주 많이 사랑하는 화초 중의 하나다.
야래향화분을 분갈이 해주면서 숯이 섞인 비료흙을 넣어주었더니, 꽃 대신에 은은한 숯향기와 흓내음을 즐기게 되었다. 특히, 아침과 저녁에 물을 주고나면 그 향긋함이 가슴 속까지 시원하게 씻어주는 것 같다.
야래향은 낙엽식물이다. 가을에 꽃을 피우고 하얀 씨앗을 맺고나면, 노랗게 잎을 물들여 떨어뜨린다. 겨울을 나면, 야래향엔 어김없이 연두색의 너무도 여리고 이쁜 싹들이 가지 마디마다 빼꼼히 고개를 내민다. 어쩜 그렇게 신기하고 이쁜지... 들여다보고 또들여다보고 좋은 흙으로 분갈이해주고 비료도 주고 물도 흠뻑 준다.
야래향은 물을 아주 좋아한다. 물을 뿌리가 완전히 샤워하도록 흠뻑 주면 반드시 연두색 잎들이 활짝 웃어준다.
올 해도 어김없이 연두색 잎들을 줄줄이 달고 야래향이 창가에서 웃고 있다. 베이지색의 말없는 가지에서 어떻게 저렇게 연하고 싱그런 잎이 나오는 지....보고 또 보아도 기분좋고 마냥 신기하기만 하다.
나는 여느 화초의 봄잎들이 다 그러하겠지만, 유독 야래향의 싹과 연두잎을 사랑하게 된다. 이상하게 그 놈의 잎들을 보고있으면, 이제 7살이 된 딸아이가 생각나기 때문인 것 같다. 야리야리하게 가는 몸으로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을 초롱히 뜨고 엄마의 뺨에 본드칠이라며 지 손바닥을 부벼 붙이고는 죽을때까지 꼭 그렇게 붙어있겠다고 하는 딸애... 야래향의 연두색 어린 잎을 닮았다. 신기하고 여리고 사랑하지 않고는 배겨날 수 없게 하는 묘한 힘이 닮았다. 힘든 겨울을 잘 참아내어야만 잎을 틔울 수 있는 운명이 닮았다. 선물을 주면, 반드시 대답으로 환하게 웃고 좋아 날뛰며, 그 선물을 흠뻑 즐기는 모습이 닮았다. 저렇게 이쁜 아이를 두고 잠시였지만, 그만살고싶다는 마음으로 하염없이 한강을 바라보았던 내 자신이 너무도 부끄럽고 미안하기만 하다.
야래향을 키우던 첫 겨울이 생각난다. 첫 겨울엔 나무를 죽이는 거 아닌 가 싶었다. 잎이 거의 다 떨어지고 한 두개씩만 가지에 겨우 매달려 있었으니... 인터넷을 검색해보아도 야래향에 대한 정보가 너무 빈약해서 잎이 떨어지는 게 자연스러운 건지, 영양이 부족한 건지, 너무 추워서 인지, 물이 적은 지 확인해볼 수가 없어서 무작정 기다려보기로 했었다. 기다려보자....나무 가지를 만져보니 안이 차있고 물이 든 것으로 보아, 분명히 죽은 것은 니지 싶었다. 거실 안에 들여놓고 조바심과 두려움이 섞인 채 겨울이 다 끝나가고 있는데도 잎이 다 떨어진 베이지색의 가지는 푸른 새가지를 뻗지도 조그만 싹도 보여주질 못했다. 그렇게 삐죽이 가지만 앙상히 남아있던 그 놈을 보며...이걸 내다 버려야하는 건가...내가 잘 못 돌봐서 또 화초를 죽인건가....많이도 망설였었다. 그런 내 마음에 문득 내 아픈 추억과 아이가 떠올랐다. 내 삶이 버거워 하염없이 한강을 내려다보며 그만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울던 내게 뱃속의 아이는 툭툭 발길질을 하며, 자신의 존재를 내게 알려주었었다. 내가 이러면 안되지... 이 아이는 얼마나 받고싶었던 하늘의 선물인데... 늘 조용히 내 넋두리와 일상을 함께 했던 뱃 속의 아이가 내게 말하고 있었다. '엄마....내가 있잖아...힘 내요!'라고...내가 절망과 회의로부터 벗어나서 죽음이나 체념대신에 삶과 아이를 선택하여 잘 살아내고 있듯이, 놈에게도 기회를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양제를 꽂아주고,물을 주고,마른 잎들을 떼주고,빛이 좋으면 창가에 옮겨놓아주면서 간절히 빌고 또 빌었었다. 봄 햇살과 함께 연두색 싹을 가지에 매달아주기를... 다시 가을이 오면 그 향기로 내 사랑에 답해주기를...
그런 내 갈망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3월의 꽃샘추위가 한참인 어느 날, 밤 새 연두색 어린 싹들을 아기 이빨만큼씩 줄줄이 매달고 야래향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 찬 공기에 어깨를 움츠리며 거실 커튼을 열던 나는 그 놈이 준비한 깜짝 이벤트에 정말로 악!!!!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제일 먼저 딸애가 뛰어나오고 잠이 덜 깬 신랑이 놀래서 달려나온다.
이것 봐!!! 살았어 !!! 이 연두색 싹들 좀 봐 !!! 여기도 있다...여기도 있다....흥분한 마음에 이른 아침부터 들썩거리며 수선떠는 나에게 딸애는 같이 싹을 찾아내며 겅중겅중 좋아해주었고, 너무 이쁘다며 입술을 갖다댄다. 무뚝뚝한 남편도 왠 일인지 핀잔대신, 와...신기하네....거의 죽은 거 같아서 밑에다 버려야겠다 생각했었는데...한다. 아....내 마음을 함께 나눠 준 아이와 남편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 지.... 내 갈망에 연두색 웃음으로 마음을 열어 준 야래향이 어찌나 사랑스러웠는 지.... 내가 살아있음으로 해서 이런 기쁨을 맛보게 되었음이 얼마나 감사한 지...
오늘 비오는 창가의 야래향 연두잎이 더욱 사랑스럽고 이쁜 것은 이제는 의연히 야래향의 겨울을 지켜 볼 수 있는 여유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