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 5월 31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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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문득 잠이 깼다. 참 날이 길어졌구나를 저절로 느끼게 4시 30분인데도 밖은 벌써 어슴프레 밝아온다. 이런 저런 생각에 시간을 보내고 이런 시간이 낯설다. 늘 아이와 집안일에 쫓겨 살다보니 이젠 시간이 나면 오히려 안절부절한다. 책을 읽으면서도 머릿속엔 온통 다른생각뿐. 오죽하면 예전에 도서관에서 빌려본 책을 다시 빌려와 읽으면서도 몰랐을까 책이 머릿속에, 아니 가슴속에 남질 않는다.
프랑스. 나 죽기 전에 프랑스에 가 볼 수 있을까. 늘 날짜만 보던 달력의 뒷쪽을 보니 프랑스 지중해 연안의 풍경이 담겨져있다. 푸르고 넓은 바다. 연중 온화한 지중해성 기후 내 나이 한 50쯤 되어 여유가 생기면 오빠랑 느긋하게 여행을 즐기며 살 수 있기를...
무엇을 얻기는 어렵다. 내것을 버리는 것은 더 어렵다.
류시화의 -하늘호수로떠난여행- 이 요사이 날 많이 위로한다.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안에서 열심히 사는것. 쉬운 진리지만 너무 자주 잊고 욕심만 많이 부리게 된다. 어쩌면 너무 운명에만 모든걸 맡기는 수동적인 삷의 자세인지 모르지만 요즘 내게는 그런 겸허한 생각이 필요한것 같다. 너무 많은걸 욕심하고 일이 결정되기도 전에 걱정으로 날을 보내고.
자신이 원하는대로 일이 되어가기를 기대하지 말라.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라. 나쁜 것은 나쁜 것대로 오게하고 좋은 것은 좋은 것대로 가게 하라. 그때 그대의 삶은 순조롭고 마음은 평화로울 것이다 - 로마의 대 철학자 에픽테투스
그래. 지금 내가 힘겹다고 느껴지는 지금의 시간들도 머지않아 사라질것이다.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이자. 내가 조급해한다고 달라질 게 아무것도 없지 않은가. 내 마음의 평화, 그리고 오빠 마음의 평화를 잃지 않도록 돕자. -------------------------------------------------------------------------------------------------------------- 참 힘든 시간들이었다. 남편의 회사가 IMF의 직격탄을 맞고 빅딜얘기가 나오면서 하나 둘 회사를 떠나고 정리가 되는 시기라 하루하루가 겁이 났다. 이러다가 우리는 어떻게 될까.. 아마 프랑스의 풍경 사진을 보며 좀 울었던것도 같다. 그런날을 꿈꾸면서도 과연 그런날이 올까 하면서..
인생은 참 살만한것이다. 그런 시련이 오히려 나의 인생을 180도로 바꾸어 놓았고 회사를 옮긴 남편도 자리를 잘 잡아서 무사히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그때 월급이 92만원이었는데 IMF직전에 구입한 아파트 대출금 갚고 이것저것 내고 나면 남는게 없었다. 소원이 내손에 생활비로 50만원만 딱 쥐어보는거였다. 지금은 훨씬 좋아졌는데도 여전히 모자라서 쩔쩔 매고 있으니 아무래도 내 경제생활방식에 문제가 있는듯.... 힘든 시절을 뒤돌아보니 갑자기 지금이 행복하게 느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