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화끈하게 비구경 시켜준 하늘에게 시원한 하루를 기대했더니
잔뜩 물머금은 하늘은 하루종일 찜통 더위를 선사하더군요.
특별한 계획없이 그냥 저냥 하루를 보낼 요량이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나의 운동 파트너 동네 언니
"너 오늘 밖에 나갈일 없니?"
"응 특별한 일 없어."
"그럼 나 병원가는데 같이 좀 가자..."
혼자가기 싫다며 떼를 부리듯 같이 가자합니다.
계획은 없었지만 장 본지가 한참이라 아이들 간식이며 반찬거리나 마련할까 싶어
"그럼 이따가 점심때 지나서 가자."고 했습니다.
매일 점심때면 집에 와서 식사하는 남편도 있고
오늘부터 시험기간인 아이 점심도 챙겨야 하니까요...
남편이 다시 가게로 나가는 차편으로 언니와 함께 지하철역까지 가서는
오른 요금(수입은 떨어지는데 물가는 오르고 정말....)으로 지하철 타고
언니가 다니는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언니는 3년전부터 종합병원의 정신과 약을 복용중입니다.
정신과 다닌다고 하면 예전이면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었지만
요즘은 스트레스 때문에서인지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부터 시작해서
시집살이로 인한 여자들이 많이 앓고있는 화병이라는 병명부터
수많은 병명으로 전문의를 치료를 받는다고 합니다.
언니와 안지는 이제 9년째가 되어가네요.
작은 동네라 모여서 놀고 먹기를 즐겨하던 시절
인사를 나누다보니 언니네 아저씨께선 남편 학교 선배셨어요.
그래서 아저씨나 언니나 더 편하게 대하며 지냈는데
언니는 늘 남에 얘길 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이나 예나 항상 힘들지만 가게를 하다가 정리를 하고
생활에 보탬 될까 이리저리 직장을 찾던중
마침 언니가 다니던 가내수공업 공장에 자리가 나서
언니덕으로 직장에 다니게되고 직장 동료가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언니의 힘든 속사정도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언니는 아저씨 사업이 완전히 파산하게 되셔서
빚쟁이를 피해 촌동네인 우리 동네까지 들어와 자리를 잡게 되었답니다.
늘 쫒기는 마음으로 집밖에도 못나가고 불안한 마음으로 살았답니다.
모르는 사람을 보면 혹시 빚쟁인가 싶어 가슴이 철렁하고 늘 편할날이 없었답니다.
사업만 하시던 아저씨께선 다른 사업방안을 찾는다고
집에 생활비조차 갖다주지 않으시고 언니는 날품을 팔다시피하며
두 아이 뒷바라지를 했답니다.
여고때는 연대장까지 하고 어느 동네에서 누구네 집하면 다 알아주는 집 딸이었다는데 그런 언니가 친정에도 못가고 그저 이 손바닥만한 동네 언저리만 빙빙돌며 살았답니다.
언니네 큰아이와 우리 큰아이는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라
아이들 키우는 문제며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며
하나씩 하나씩 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물론 저두 언니가 참 많이 의지가 되었습니다.
속상한일 있을때면 친언니처럼 다독여주고 맛난 반찬도 챙겨주고...
그런 언니가 삼년전 어느날 갑자기 쓰러졌습니다.
체격도 좋고 누가봐서도 건강해 보이는 그녀였는데
퇴근하고 집에서 아이들 저녁 준비하다가 그냥 쓰러졌습니다.
정밀 검사를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나오고
그러면서 정신과 진료를 권했던거지요....
언니는 저한테 얘기했던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가슴속에만 꾹꾹 담아놓고 혼자서 삵힌 그 시간들속에서
속으로 속으로 한없이 곪아가고 있었나봅니다.
가장 역할을 못해주는 남편 대신 짊어진 생활고에 억눌리고
남에게 말할수 없는 자기 현실의 비참함을 감추고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부채에 따른 빚쟁이들에 대한 공포...
이런것들이 언니를 그렇게 만든거지요.
그래도 동생으로 생각하는 내게는 얘기할수 있어 그나마 편하다고...
앞으로도 약에 의지하며 살아야 할 날들이 힘겹지만
언니는 지금 자신의 일에서 손을 놓고 육체적으로나마 편해졌습니다.
늘 나에게 언니이며 친구인 그녀가 행복했슴 좋겠습니다.
함께 운동도 하고 웃고 즐기면서
그녀의 마음의 병이 다 치유되었슴 좋겠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길
두손이 모자랄만큼 시장을 보면서 싸게 싼 물건들에 행복해하는 그녀
그녀의 행복한 모습에 저까지 행복해졌습니다.
도움줄수 있는건 없지만 늘 그녀곁에서 착한 동생이고 싶습니다.
그녀를 사랑하니까요....
언니야 사랑한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