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의 차의역사는 약 1400년정도 됩니다
신라시대 선덕여왕때의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차는 군자의 기질과 덕을 가지고있고 맑은인격과 고매한 학덕이 있고
예를 고루 갖춘사람을 다인(茶人)이라 칭했습니다
신라는 우리역사상 차문화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입니다
주요 국가행사에는 진차(進茶)의식이 당연히 행해졌고
왕이 손수 차잎을 갈아서 만든 말차를 애용하고 왕실과 사원에서
가장 중요한 의식이 차의 문화였습니다
고려시대에도 왕실에선 의례적이고 사원에선 불공의 첫째요
일반사회에서는 격의없는 자유분방한 것이였습니다

차는 머리를 맑게하고 문학을 논하고 심성을 순화시키고
그렇게 고려의 불교를 깊이있게 했고 고려가사의 발전과함께
우리민족을 한결 품위있게 한것이 차였습니다
그런 차(茶)를
본디 고유명사임에도 불구하고 차한잔 하자~ 함은
사이다도 콜라도 커피도 율무도 모두 차의 반열에 오르게 함으로써
우리스스로 격을 낮추게 한일은 아마도 천추에 한으로 남을 일입니다

동양문화인 일본에서는 다도로 격이 높아있고
중국에서도 분위기있는 좋은찻집에서는
꽤나 많은 돈을 지불하여야 차한잔을 마실수있고
사상 최고의 경매가격에 경매된 차의 주인이 대만인 이라는 사실에
중국 시중의 화제는 온통 그 유명한 차이야기가 회자되는 그런 작금에
지금 차문화를 배우는 저로서는 가슴이 저며 옵니다
차를 더욱 맛있게 먹기위한 방편으로 청자문화가 발전했는데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차문화는 급격히 쇠퇴함과 동시에
겨우겨우 깊은 절간에서 스님들이나 하는 고매한 음식
마치 불교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완당평전] 이란책에보면
한국의 다성으로 추앙받는 초의선사가
전라도땅 해남의 대둔사에 은거하고있을때
추사김정희는 동갑네기의 정을 나누면서
"나는 도저희 차와의 인연만은 끊을래야 끊을수 없으니
어서 새로 만든차를 많이 보내달라는 간청과 함께
빨리 많이 보내지 않으면 몽둥이 서른대를 아프게 때릴테니 맞아라"
라고 초의스님에게 애교어린 간청을 하네요...
이렇게 사대부와 깊은절에서나 나누던 이런차를
겨우 명맥을 유지하면서 절간에서는 차나무를 키우고 유지했지요

예전 전라도 백양사 내실에서 스님이 고찰에서
제조해서 3번이나 우려내면서 맛의차이를 물어오던데
아무리 먹어봐도 차이를 몰랐으나
이제는 맛을 아주 조금은 알것같습니다
제 경험으론 이렇게 차의 맛은
깊고 심오한 맛이 우러나오는것이 아닐까......
마시면 마실수록 더 간절하게 뭔가가 우러나오는것이 차라고 생각합니다
지리산 남쪽자락에서 자라는 야생의 차나무로 겨우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절에서 몇그루씩 차나무를 기르면서 절간의 음식이 차인냥 자리매김 하고
사대부들에게서나 신분의 차별화인냥 생각되던 차였는데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조선의 고찰에서 차맛을본 중국 명나라 사람들이
조선에요구한 공물목록에 차가 들어있었습니다
수소문한 차는 남부지방에서 야생으로 생산된다는 장계에
지리산 남쪽자락의 수령들에게 파발이 내려오고
할당되어진 차를 만드느라고 우리의 조상들은
지리산 깊은골을 누비고 누벼서 야생차를 채취하여
말리고 찌고 다듬고 포장하는 수고를 난생처음 당하니
그 고생이 이루 말할수 없었습니다
견디다못한 백성들은 남쪽자락의 야생차밭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에게 차는 은혜의 작물이아니라 천하의 원수였지요
지금껏 만들어 바치던 지역 특산물 이외에
복잡하기 까지한 차만드는 수고를 한가지 더하려니
이건 기가찰 일이였을 겁니다
원수덩어리 차는 이렇게 더욱더 깊이 숨어버리고 말았지요

이러한때 나온 허준의 동의보감이 편찬되고
인삼즙 쌍화탕 결명자차 오미자차 율무등이 백성들의 사랑을 받게되었지요
그덕에 일본과 중국의 차수출량은 수백억 수천억이 된다니요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생산되는 차의맛은 얼마나 귀한지요
400년전에 지리산 남쪽자락을 뒤흔들어서 커다란 사회문제가 되었던일을
지리산을 혹시라도 가신다면 양지바른 3-4부능선을 처다보시면서
우리네 조상들의 수고한일을 가만히 생각하시면서 산행하시기 바랍니다
얼마나 많은우리선조들의 피와땀이 서려있는 지리산인가요
그속에 차의 이야기가 있다고 생각해 보셔요
야생차 나무때문에 임진왜란때문에 그 고귀한차의문화가
이렇게 변질되다니요
야!!! 차한잔 하자
고귀한 차의 문화가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것이 차라는 의미로 우습게 여기게 되다니요
보이세요?
저밑에서 하얀옷을입고 남부여대하여 개미같이 차나무에 달라붙어서
공물을 채취하는 우리조상들의 모습을 가만히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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