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꺼삐딴 리" 를 읽고.......
37red ━┓ 메세지 2004/08/09 01:38   http://blog.azoomma.com/37red/149177

 
      어제는.......... 밥달라 물달라 보채는 식구들이 계곡으로 떠났다. 간만에 만끽하는 혼자의 시간. 기대에 없었던 선물을 받고 마음이 붕붕~ 우짤꼬 너무 좋다. 등줄기 싸늘하게 찬물을 끼얹고 책을 들었다. 한국 명작 소설에 당당히 함께있는 전광용의 '꺼삐딴 리'를..... 전광용은 1919년 함남 북청 출생이다. 88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 하늘 소풍까지 장 단편의 많은 책을 썼다. 그의 작품은 해방이후 극도로 혼란한 시대적 배경이 주된 재료. 민주주의와 이념 지향에 초점을 둔 내용이 많은 게 특징이다. '꺼삐딴 리'는 일제 시대 제국 대학 의학부를 수석 졸업한 외과 의사 '이인국'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이인국은 혼란의 시대에서 파(?)를 잘 먹은 인물이다.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파, 광복 직후 북한에서는 친소파, 월남한 후 남한에서는 쭉 친미파로 잘 살아 남았다. 제국 시대에는 자식을 일본인 학교에 보내어 일어를 배우게 했고, 독립 운동을 하는 조선인들의 치료를 거부하며 목숨을 보존했다. 해방 후에는 소련이 북한을 점령하자 러시아어를 익혔다. 의술로 실권을 가진 소련군 장교의 환심을 사며 절명의 위기를 극복한다. 1.4 후퇴에는 거제 포로 수용소에서 아내를 잃지만, 수복후에는 발빠르게 움직여 병원을 차렸다. 종합 병원의 원장 자리를 차지한 그는 20살 아래의 간호사 혜숙과 재혼을 했다. 유복한 가정을 꾸리며 사는 가운데 이제는 미국으로 갈 꿈에 젖는다. 국보급인 고려 청자를 미국 대사관 직원에게 뇌물로 바쳐 미국행 보장을 받았다. 비행기 탈 날짜를 손꼽아 기다리는 그의 불안한 모습을 뒤로 한 채 이야기는 끝이 난다. 이인국은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 초연한 인물이다. 자기의 안녕과 이익을 위해 시대의 주역에 받들어 충성할 줄도 안다. 이기주의자, 출세주의자의 표본이라고 할까? '꺼삐딴 리'는 인간이 가진 기회주의적 속성과 민족 위정자들의 부도덕을 함께 고발하고 있는 소설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단순히 고발적인 방식을 떠나 시대의 흐름과 현실의 변화 속에서 사람들은 어떻게 굴절(?)되고 변해 가는지를 더욱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역사는 동강 맑은 물처럼 유유히 흐른다. 그 맑은 물에 레프팅을 즐기듯 물살을 따라 가고 있다. 시대에 부응하며 산다는 것이 발빠른 움직임을 뜻하랴. 곰처럼 우직하며 꿋꿋하게 살아가는 게 최선일까. 갑자기 생각이 아득하다. 소설의 끝 부분 이인국의 독백이 귀를 후비고 들어 온다. '흥, 그 사마귀 같은 일본놈들 틈에서도 살았고, 닥싸귀 같은 로케스트 속에서도 살았는데 양키라고 다를까. 혁명이 일겠으면 일구, 나라가 바뀌겠으면 바뀌구... 아직 이인국의 살 구멍은 막히지 않았다 나보다 얼마든지 날뛰던 놈들도 있는데. 나쯤이야....' 그렇다 나 하나 쯤이야.... 극도로 불안해 하던 그는 미국행 비행기를 잘 탔을까. 전쟁에 휩싸이지도 않고... 지금쯤 미국의 빵빵한 시민이 되어 맨하탄 거리 빌딩숲에서 벅찬 한국인으로 살아가고 있을까?? 신문을 펼쳐 본다. 파를 잘 먹는 이 시대의 꺼삐딴 리는 구석구석 진을 치고 있다. b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