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석
속담에도 자주 등장하는 멍석은 우리생활에서 그 쓰임이 다양했다.
곡식을 거둬들여 건조시키고,
잔칫집이나 상가에서 멍석을 깔고 혼례를 치루거나 문상객 술판을 벌이기도 했다.
또한 긴긴 겨울밤 동네 사랑방에 모여 짚이나 새끼를 엮어
멍석을 삼으며 이야기 꽃을 피우기도 했다.
산업기술의 발달로 만드는데 품과 시간이 많이 드는 물품을 대신해
플라스틱류 등의 화학제품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멍석도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는 우리것이 되버렸다
음악다방
1970년대 커피값이 60원 하던 시절 음악다방은 마땅히 갈 곳 없고
호주머니 사정도 좋지 않았던 대학생들에게 인기있는 장소였다.
장발이 유행하던 그 시절, 뒷주머니에 도끼빗을 넣고 다니며
거울 앞에서 뽐내며 머리를 빗는 DJ의 모습 또한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그 시절 약속다방은 왜 그리도 많던지,..
그 약속다방에선 또 얼마나 많은 약속들과 기다림, 헤어짐이 있었을까.
요즘엔 테이크 아웃점도 점점 늘어나고 어디서나 편리하게 커피를 마실수 있지만,
DJ에게 음악을 신청하며 감미로운 음악과 커피를 즐기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주판
사교육이 지금처럼 과열되지 않던 시절에도 주산은 많은 학생들이 학원을 다니며 배우곤 했고,
주산에도 급수가 있어 승급과 승단을 위한 시험을 보곤 했다. 하지만 실용과 속도를 중시하는
사회의 변화속에서 전자계산기의 등장으로 주판은 이제 사라져 가는 것이 되버렸다.
학교종
학교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라는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동요에 등장하는 학교종은,
산골이나 섬마을에도 전기가 보급돼 학교들이 수업의 시작과
마침을 음악소리로 알리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하지만 때로는 선생님이 쳐 주시는 이 소리를 듣고
운동장에서 놀다 교실로 달려가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사진은 한 폐교에서 책 박물관을 운영하는 박대헌씨의 모습이다.
헌책방
가난하고 물자가 귀했던 시절 헌책방은 각종 교재와 도서를 싼값에 구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시절에는 신학기가 되면 교재와 참고서를 사려는 학생들로 헌책방은 늘 만원을
이루었다. 풍족해진 환경으로 지금은 헌책을 사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지만,
구하기 힘든 책을 찾아 싸게 사는 그 쏠쏠한 재미는
새 책을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사진은 청계천 평화시장 주변에 있던 헌책방들이다
불량식품
쫀드기 등 속칭 불량식품들로 불렸던 군것질거리 들이다.
지금처럼 간식거리가 풍족하지 않던 시절, 사먹지 말라는 부모님과 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런 불량식품들은 늘 아이들에게 인기만점이었다.
학교앞 문방구에서 많이 팔았던 이 불량식품들은
난로에 구워먹을 수 있는 겨울이 오면 그 진가가 더했다.
색깔과 모양도 촌스럽고 맛도 지금의 과자에 비하면 볼품없지만,
그래도 그때 그 시절 최고의 간식거리였다.
표어
기성세대라면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은 머리를 짜며 표어 숙제를 해봤을 것이다.
6.25즈음에는 반공 표어, 봄·가을이면 불조심 표어등 유난히 많은 표어들이 있었다.
사진의 이 표어들은 요즘 아이들에게는 생소하겠지만,
어른들은 이 표어를 보면서 그때 그시절을 추억할 수 있을것 같다.
공중전화
1969년 국내에서 제작된 최초의 공중전화기가 등장,
가정에 전화가 없는 서민들에게 편리함을 주었다.
첫 공중전화기는 벽걸이 형태로 시내통화만 가능했다고 한다.
요즘의 공중전화는 카드식도 있고 다양한 기능이 많지만,
예전에는 주화만 가능하고 공중전화 부스도 따로 없었다.
핸드폰의 대중화로 공중전화가 점점 줄어드는 요즘엔
공중전화 요금을 모르는 사람들도 많은것같다
구슬
작은 구슬 하나로 웃고 울었던 시절이 있었다.
구슬치기를 해본 사람들이라면
세모치기, 봄들기, 홀짝, 삼치기 이런 이름이 낯설지 않을것이다.
다양한 색만큼이나 노는 방법도 참 다양했다.
장난감이 부족했던 그 시절에는 이 작은 구슬 하나로도 시간가는줄 몰랐는데,
학원에 지치고 컴퓨터 게임에 익숙한 요즘 아이들에게
구슬치기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버렸다.
연탄
초겨울 찬바람이 불기 시작할때면 서민들의 애환이 서린 연탄이 추억으로 다가온다.
어렵사리 살던 시절에 우리는 연탄 한 장이면 끼니를 해결하고
온가족이 옹기종기 따뜻한 밤을 지낼수 있었다.
지금은 보일러가 보편화되고 기름과 가스가 주 연료로 사용되지만
불과 얼마 전만 해도 서민생활에서 연탄은 생활필수품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 주변에서 연탄을 때는 가정들이 있다.
서울의 수많은 달동네와 빈민촌에서는 여전히
겨울이 되면 연탄을 나르는 힘겨운 손길이 있다.
사진은 서울시 금천구 고명 연탄공장에서
각 가정에 배달할 연탄을 차량에 싣고 있는 모습.
얼음가게
냉장고가 없거나 희귀했던 시절,
찌는듯한 여름날 '어름가게`로 달려가 얼음 한덩이를 사서
화채를 만들어 먹던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사진은 동양제빙주식회사에 한 근로자가 얼음을 옮기고 있는 모습.
30도가 넘는 복더위를 무색케 한다.
스카이콩콩
한때 인기를 끌었던 스카이콩콩은
스프링이 부착된 쇠막대에 올라타고 외발로 뛰는 어린이들의 놀이기구였다.
당시에는 지금의 인라인스케이트나 퀵보드의 인기에 견줄만 했다.
난로위의 도시락
온풍기를 비롯한 각종 난방기구들이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해주지만,
난로처럼 훈훈한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도시락을 올려놓지 못해서일까?
지금의 난방기구처럼 따뜻하고 편리하지 않아도
겨울하면 난로가 생각나는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것같다.
펌프
지금처럼 상수도 시설이 없던 시절,
펌프를 이용해 빨아올린 물로 등목을 하는 기분이란.
사진은 경기도 가평군 북면 소법리의 한 농가 풍경.
아버지가 펌프로 물을 뿌려주고 어머니는 아들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